본문 바로가기
2002년/2002년 7월 강의

신성의 본질 33

by 빌보 배긴스 2019. 3. 18.

신성의 본질 33

 

거기에서 어떻게 600으로 갈까? 나는 그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저절로 일어난다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고 서서히 일어날 수도 있다.

 

500이 되면서 그것을 약간씩 보기 시작한다. 500으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렵긴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는 뜻이다그저 기적수업을 열심히 하면 된다열심히 기도하고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을 용서한다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임이 된다그러면 삶이 그렇게 변형된다그러면 600의 창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그리고 닫힌다.

 

숲을 걷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절대적인 고요와 현존의 감각이 있다. 자신이 신의 현존 안에 있음을 알 수있다그러나 그 상태가 지속되지는 않는다처음에는 다시 열리다가 지속되지 않는다.

 

고전적인 기독교 문헌에서 성인들은 사랑하는 분이 오셨다가 그들을 절망에 남겨두고 떠나셨다고 한탄한다. 무한한 사랑인 것은 이제 그에 대한 도전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치유하기 위해 사랑이 아닌 것을 불러들인다사랑이 사랑 아닌 것을 불러들인다는 것은 고전적인 영적 묘사이다.

 

에소테릭의 근원이 무엇인가우리가 우리의 세상 혹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한한 수의 차원 중 하나일 뿐이다. 차원의 숫자는 끝이 없다고전적으로 내적 차원, 천상 영역, 내가 하위 아스트랄이라고 부르는 낮은 수준들, 중간 아스트랄, 높은 아스트랄 등이 있다. 그들은 다른 묘사적 용어를 가지고 있다.

 

인류는 수 세기동안 백일몽이나 마약, , 비전, 다른 사람들의 경험 등을 통해 그것들을 발견했다. 아주 많은 차원과 에너지 형태와 많은 존재들이 이 많은 차원에 있다최선의 영적 가르침은 그들이 허구라고 하지 않는다. 거기 개입할 수준이 아니므로 가지 말라고 한다. 당신은 위지보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이 방의 누구도 위지보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이 방의 누구도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것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게 틀렸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거기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당신은 사실상 그 쪽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서 어떤 자각awareness도 없이 그 영역을 찔러보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몸을 볼 수 없는 영적 가르침은 피하라는 영적 가르침을 받았다.

 

당신이 들을 필요가 있는 모든 진실은 이미 몸을 입은 인간들에 의해 가르쳐 졌다. 바바 누구누구가 말한 위대한 신비한 진실 같은 것은 없다.

'사막 한 가운데서 자정쯤 외계인이 데리러 올 것을 기다려라.'

그런 것은 필요 없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들은 사실 대여섯 개 밖에 되지 않는다.

 

최종 수정: 2019년 3월 18일

 

'2002년 > 2002년 7월 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성의 본질 34  (0) 2019.03.19
신성의 본질 32  (0) 2019.03.17
신성의 본질 31  (0) 2019.03.16
신성의 본질 30  (0) 2019.03.15
신성의 본질 29  (0) 201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