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3
행복은 자발성에 있다.
나는 말한다. ‘이것을 신께 서렌더할 수 있는가?’
‘예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행복이 시작되는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그냥 하는 것이다.
처음 단계는 could이다. Could you?
사람들은 자신들은 그것을 let go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당신의 머리에 장전된 총을 대고 ‘그것을 let go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면 ‘예,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당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임을 깨달아라.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let go할 수 있다.
모든 갈망을 신께 서렌더하려는 자발성.
묘사하기 어려운 어떤 삶의 기쁨이 있다. 그것은 사건들과는 무관하다.
삶의 기쁨은 모리스 슈발리에 같은 그런 태도이다.
행복은 또한 특정한 스타일이다.
모리스 슈발리에는 자신이 77살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는지 질문을 받고, ‘대안을 생각하면 사실 아주 좋아요.Considering the alternative, very good, indeed,’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82살에 같은 감상을 표현했다.
삶의 기쁨은 삶에 대해 어떤 태도, 행복하고 감사하며 즐기는 사실상 실존적인 입장을 가지겠다는 결정의 일부이다.
삶의 기쁨은 실제로 외부에 일어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신은 게임 자체를 위해 게임을 하지 이겨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이라는 게임의 기쁨은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닌 게임을 하는 데서 온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에는 이기거나 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길 방법도 없고 질 방법도 없다. 승리와 패배는 모두 당신이 어떤 것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것을 멋지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가지면 ‘Oh, I won.’이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가난해지면 당신은 진 것이다.
제발 나에게 낙타를 주지 말라. 난 그것을 돌 볼 시간이 없다. 먹이를 줘야 하고 배설물을 삽으로 치워야 한다. 제발 나에게 아무 것도 주지 말라.
당신이 삶의 기쁨을 들여다보면, 모리스 슈발리에처럼 당신은 자신의 존재를 축하한다.
자신의 존재를 축하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의 근원이 되도록 노력하라. 삶의 기쁨을 경험하는 길은 다른 사람에게 선하고 유쾌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하는 방식이 당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기쁨은 사건들과는 관계가 없다.
만약 당신이 행복하거나 불행하면 당신은 자신에게 물을 수 있다.
우리 내면에는 무의식적으로 아이, 성인 혹은 부모가 있다. 그러므로 누가 행복한지 혹은 누가 불행한지 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