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21
그러므로 이 모임에 온 모든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심해 다이빙을 가지 않을 사람이라면 심해 다이빙 레슨에 가지 않았을 것과 마찬가지로 깨달을 운명이 아닐 사람이라면 이런 강의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길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일단 깨달음에 관해 들었다면 그보다 못한 것에는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단지 그것에 대해 듣는 것으로 이미 의식에 각인되는 것이다.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의 현존에 있는 것만으로 의식에 그 진동이 새겨지는 것이다. 그보다 못한 것은 결코 더 이상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결말은 확실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만 걱정해도 된다. 거기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의해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운명 지어진 것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현재의 일을 과거에 의해 원인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단지 뉴튼적 패러다임에서 일 뿐이다.
양자적 현실에서 미래는 과거만큼이나 강력하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 보다 더 강력한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말로 하면 미래의 끌어당김은 과거의 매달림과 그 힘이 같거나 혹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근육테스트 긍정)
그것은 사실이다. 당신의 과거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여기 모든 사람들이 멋진 미래를 가지고 있다.(근육테스트 긍정)
당연히 그렇다. 당신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미래로 끌고가는 즐거움으로 여기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 진리, 신성한 것, 온유한 것, 아름다움, 친절, 부드러움, 사람의 무한한 잠재성이되는 것에 자석처럼 이끌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에 대한 내적인 헌신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한다.
나는 언제나 신에게 헌신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것은 사실이다.(근육테스트 긍정)
재미있지 않은가? 그들은 이미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마치 거대하고 강력한 자석에 의해 공간에서 유지되고 있는 작은 쇳가루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이 거기로 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확실하게 거기 매달려 있다.
우리의 무한한 잠재성에 의해 강력하게 끌리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다른 강의, 다른 장소에서 명상, 다른 워크북, 다른 진언, 경배의 다른 형태를 했을 것이다. 경배하는 최선의 형태중 하나는 온전성이다. 온전성은 신을 경배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신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목수일 이외에 어떻게 내가 최선으로 신을 공경할 수 있을까?
나는 최근 목공일을 하다가 온통 상처가 났다. 작은 저장실을 만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나 시간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최종 수정: 2019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