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 가능한 것은 400대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증명가능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awareness의 필드 안에서 산다.
우리는 주관성이라는 필드에서 살고 있다.
기계론적 연역론과 세속주의 조차도 주관성에 기대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주관적으로 자신이 그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04-4-23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한한 맥락은 영이다 (0) | 2022.04.21 |
---|---|
유체이탈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0) | 2022.04.20 |
쿤달리니는 (0) | 2022.04.19 |
당신이 그것이 되는 것이다 (0) | 2022.04.19 |
상대주의는 (0) | 2022.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