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당화된 분노는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당신은 ‘뭐?’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옳다.
왜냐하면 신의 의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존재와 함께 가는 카르마적 결과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존재와 함께 가는 카르마적 결과들.
그것들 중의 일부는 단지 원형질적인 것들이다.
내말은 이 몸은 원형질이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원형질과 충분히 오래 함께 하면
결국 당신이 뭔가를 보기 위해서는
돋보기가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형질의 카르마.
분노는 속에서 맺히는 경향이 있고
당신은 그것을 재맥락화해야 한다.
06-10-9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분노에서 단물을 얻고 있다 (0) | 2023.06.12 |
---|---|
지각이 존재하는 한은 (0) | 2023.06.11 |
증오라는 회전목마 (0) | 2023.06.10 |
에고의 결함은 비개인적인 것 (0) | 2023.06.10 |
왜 사람들이 증오에 매달리느냐 (0) | 2023.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