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4
왜 고양이의 가르릉거림과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500인지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인간의 최고의 동반자인 개의 꼬리 흔드는 것이 500으로 측정된다. 당신이 500이상인 사람을 만나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고양이의 가르릉거림과 개의 꼬리 흔드는 것은 인간에게 사랑을 반영해준다.
이들은 신비롭게도 이 행성의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 높게 측정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개를 싫어하는 문화는 신뢰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500대인 것을 싫어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고양이를 어떻게 하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내 추측에 고양이를 먹거나 할 것 같다.
-서양의 위대한 책들.
이것이 고전적인 교육이며 400대 중반으로 측정된다. 중세의 암흑기로부터 서양의 위대한 책들의 지적인 박식함인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이것으로부터 서양문명이 올라왔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모든 위대한 마음들로부터 올라와서 르네상스를 통해 철학적이고 지적인 온전한 진리가 다시 깨어났다.
다윈주의적인 과학은 450으로 존중된다.
뉴턴 패러다임. 아이작 뉴턴은 499이다. 그는 기념할만한데 그와 프로이드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모두 499로 측정된다. 그것은 인간 지성의 한계이다.
인간의 지성은 오직 499까지만 갈 수 있다. 그런 후에는 현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여기까지도 여전히 인과율의 세상이다.
여기로부터 모든 과학이 올라왔고 전통적인 미국의 인문학 교육은 이 모든 위대한 이름들과 익숙해지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거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엥겔스는 200이고 미국과 세계에 불행히도 마르크스는 단지 130으로 측정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포스트모던 철학은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파자들은 정치적인 저항을 야기하는 마르크스의 이름을 제거하고 정치적인 올바름으로political correctness 변증법적 유물론을 보존했다.
-우리는 잠재성이 실재성이 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 잠재성은 그것을 둘러싼 에너지에 의해 실재화된다. 그것이 이제 하이젠베르크 원리로 불린다.
하이젠베르크원리는 단순히 모든 것이 잠재성이 실재성이 되는 결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근육테스트는 단지 예스 대 not 예스이다.
당신이 보듯 그것은 예스 혹은 노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예스 혹은 예스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녀의 팔을 테스트할 때 진실은 팔을 강하게 하고 그것이 예스이다. 거짓에는 말을 강하게 하는 진실이 없다.
자연은 ‘노’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뇌 생리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