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6
왜 그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가 아시아의 절반을 지배한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한다. 언덕의 왕이 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포유류적 반응이다.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망은 에고에 내재적인 것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헤게모니이든 뭐든 당신이 원하는 것으로 재미있게 지낼 수 있지만 그들은 그것이 선천적인 동물 반응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알파 메일, 지배, 알파 피메일 등. 갈등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여기는 동물 뇌가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언덕을 지배하자마자 동물의 뇌는 그 주변의 다른 언덕을 지배하기를 원한다.
인류의 문명은 미어캣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미어캣은 우리는 여기 살고 당신들은 거기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행동과 국제 관계 그리고 이란, 이집트 터키 등의 모든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미어캣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이 동물적 좌뇌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미어캣임을 볼 때 당신은 연민을 발전시키게 된다. 끔찍하다고 말하고 그들을 싫어하고 악마라고 부르는 대신에 말이다.
그것이 그 미어캣들이 있는 곳일 뿐이다.
-행복율.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은 언제나 모든 것을 피해자 가해자로 생각한다.
그런 것들은 외부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치성으로서 투사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제 모든 것을 피해자 가해자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사회학에 투사될 때, 당신은 언제나 가해자와 피해자를 찾을 것이다.
오늘 날의 세상의 많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들이 가해자 피해자에 기초해서 그렇게 한다. 그것은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이다.
행복율은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외부적 조건에 관련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야만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야만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행복율, 실업율, 범죄율 등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니고 오직 의식수준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것들은 가난한 성장과정, 나쁜 교육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카르마적 경향성으로 인해 그런 종류의 환경으로 태어나는 경향이 있다.
가해자와 원인 같은 것은 세상에 투사된 관찰자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숲에는 큰 나무가 있고 작은 나무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말한다. ‘큰 나무가 어떻게 작은 나무의 햇빛을 훔치는지 보라고.’
작은 나무는 큰 나무의 피해자인 것이다. 이제 당신은 마르크스 변증법과 현대의 정치적 언술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의 햇빛을 훔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나무는 나쁘고 악한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
생명과 그 모든 표현을 소중히 하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다.
-신성에 대한 묘사들은 모두 진실로 측정되고 무한대로 측정된다. 그리스도, 그리스도 의식.
그리고 참나를 보면 그것도 무한대로 측정된다. 그것이 내재적 신성이다.
신은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두 방식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