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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2007년11월 강의

생존 11

by 빌보 배긴스 2017. 4. 19.


생존 11

 

200이하는 모두 감정이다. 거기에는 생각함이 없다.

생각함은 사실 400이 되기 전에는 시작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함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화도 있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지적으로 박식한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도 그렇다고 추정한다.

세상의 몇 퍼센트가 생각할 수 있는지 보자.

세계 인구 중 생각하는 능력은 20%에만 있다.

사람들의 20%만이 생각할 능력이 있다. 하하하하.

그래서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때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당신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거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 지는 안다. 거기에 대해 어떻게 믿고 있는지는 안다. 당신은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문을 읽는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자신을 행위자로 생각한다. 나를 행위자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자신을 결정하는 의지적인 것으로 본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느끼는 자에서부터 어떤 사람은 몸을 나라고 간주하고 나를 뇌, 목격자, 행동의 결정자 등으로 상당히 범위가 넓다.

좀 더 섬세한 사람들은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의지이다.

그리고 명백히 카르마는 의지, 선택, 헌신 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카르마적으로 당신의 느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어떤 것이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의지volition적인 것은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카르마적으로 업 앤 다운은 일차적으로 의지volition의 문제이다.

의지.The will. 우리에 대한 신의 의지와 정렬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의지.

그것이 당신이 옳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옳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Folks, you don’t have to be right.

어떤 사람들은 틀릴까봐 두려워한다.

만약 신이 없다면 당신은 responsible하지도 accountable하지도 않다.

그래서 신을 묵살하는 사람은 열렬한 무신론자이다. 나는 오랫동안 열렬한 무신론자였고 열렬한 불가지론자였다. 그래서 나는 경험에서 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신성한 판단이나 그 모든 종교적인 미신들을 없앴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런 무신론자를 그려볼 수 있다. 그는 신을 없애고 책임성을 없애고 생을 뒤돌아보는 것을 대면하는 것도 없애고 그 모든 걱정들을 없앴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그는 커다란 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거기에서 큰 저울과 사슬을 본다. 그리고 그는 멀리에서 붐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오시리스를 잊었던 것이다. 하하하

그는 천상의 신을 부정했지만 지하의 오시리스를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오시리스는 당신의 진실의 저울로 심장의 무게를 단다. 당신이 진실에 정렬되면 이쪽으로 가고 정렬되지 않으면 다른 쪽으로 간다.

그러므로 여전히 무신론자인 사람들은 오시리스를 잊지 말라. 하하하하

만약 당신에게 무신론자인 친구가 있다면 말하라. ‘넌 신은 없앴지만 이제 네가 오시리스를 어떻게 없앨지 보겠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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