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13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카르마적으로 앞으로 나갈 옵션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영역에서는 당신에게 그런 옵션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volition and the will을 선택한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들을 사회적 개성personhood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미디어의 가상현실이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잠깐의 유명세를 위해 옷을 벗거나 절벽에 매달리는 등의 어떤 일이든 한다.
에고의 나르시시즘은 극단적이다. 그것은 어떤 극단적인 것도 한다.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온갖 극단적인 일들을 한다.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에고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더 많이 느낄수록 당신은 사회의 인정을 덜 필요로 하게 된다. 결국 당신은 사회의 인정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당신은 거기에 무관심해 진다. 만약 그들이 당신을 인정하고 좋아한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그것이 필요하거나 목표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개성은 물론 피상적인 묘사이지만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한다.
나는 감정이고 나는 생각이다. 낮은 수준에서 사람은 단지 자신이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더 진화해서 300대가 되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가 된다.
그리고 당신이 아주 섬세해지면 당신은 나인 바는 마치 빈 스크린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월요일에는 이것을 믿고 수요일에는 다른 것을 믿을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가 우리에게 프로그램하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다.
자아는 내용이자 맥락인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더 섬세해지면 당신은 나 자신인 바는 내가 생각하고 믿는 것인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매년 달라지고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맥락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데카르트의 레스 인테르나 대 레스 엑스테르나. 보이는 바의 세상 대 관찰을 넘어서있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으로서의 세상.
당신이 생각하는 세상인 레스 인테르나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실상인 레스 엑스테르나를 분별하는 것은 엄청난 섬세함을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최근 학계는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이란 내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의 문제라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세뇌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생각하고 사고하고 배우지 않는다. 이제 교육의 목적이 세뇌이다. 믿어지는가?
교육의 목적이 더 이상 교육이 아니고 세뇌라는 것.
최근 미국의 학계는 195로 측정된다.
위대한 이름의 대학들, 하버드, 다트머스, 예일 등은 미국 전체의 경제의 뼈대이자 힘이었다. 그 지적인 구조가 이제 200이하로 측정된다.
그 목적이 교육이 아니라 세뇌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진술되었다. 우리는 이제 마음과 생각의 통제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