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18
필멸성을 불가피성으로 수용하는 것, 거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우리는 더 일찍 시작한다. 그것은 단지 수용의 문제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당신이 거기에 저항하기 때문에 끔찍하게 보이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전혀 끔찍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지금 폭사한다 해도 그게 뭐 큰일인가.
우리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이다. 후.
그런 행운이 있을 리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도덕적 책임(moral accountability) 때문이다.
사람이 죽기를 원하지 않는 이유가 도덕적 책임에 대면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천사가 당신과 함께 도덕적 inventory를 가진다. 거기서 당신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생 전체가 당신 앞에서 상영되는 것이다. 사람은 이 시점에서 천사와 함께 한다.
이 질문을 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특별한 천사와 함께 한다.(긍정)
자신의 수호천사이다. 마지막 순간 도덕적 목록을 받을 때, 당신과 함께 당신의 삶을 리뷰하는 당신의 수호천사와 함께 한다.
그러면 당신은 다음 윤회의 선택의 옵션과 카르마적 에너지가 결정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는 내 영혼에 그런 것들을 영원히 가져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불친절함이나 부정성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간청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카르마적으로 적합하다면 윤회하게 된다.
이번에는 더 공감적이고 더 이해심 깊고 더 용서하는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기는 것 보다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길 것이다.
도덕적 책임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이었던 바의 진실-도덕적 책임을 대면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도덕적 책임을 수용하게 되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여기서 신성에 대한 당신의 개념이나 믿음이 당신의 도덕적 책임의 일부로, 죽음의 두려움의 일부로 제시된다.
당신이 신을 자비롭게 혹은 징벌적으로 그리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나타난다. 당신의 신에 대한 그림이 자비롭고 완전히 자비일 뿐일 수도 있고 혹은 분노하고 벌주는 것일 수도 있다.
신인동형적 신은 자연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은 지진이나 화산 등으로 그를 벌하는 신을 그렸다. 왜냐하면 신이 분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분노하는 신을 넘어서면 신은 무한한 자비의 근원이다. 그러면 당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래서 당신이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더 적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을 자비롭게 그리고, 죽을 때 동반자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만약 당신이 원하면 부정성을 해소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인간의 삶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선택하는 문제인 것이다.
내가 이 수업들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지옥은 당신이 집적거리거나 가지고 놀 그런 것이 아니다. 사악함과 악은 당신이 함께 게임을 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