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10
나는 코모도 드래곤은 그의 자리가 있고 나는 내 자리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를 내 뒤뜰에 초대할 만큼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살이다.
챈트의 단 하나의 다운 사이드는 그것이 최면적 의식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이런 챈트를 하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최면적 상태가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챈트의 다운 사이드는 자동적인 자기 최면 상태이다.
그 모든 종과 징들, 당신은 향수나 향 혹은 400달러 하는 베게 등은 필요 없다.
나는 모든 함정들을 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주 헌신적이고 의도도 좋은데 그들이 이런 다양한 함정에 잡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뉴에이지즘에 잡힐 수도 있고 미스테리나 그런 모든 것의 글래머에 잡힐 수도 있다. 그리고 자동 최면에 들게 되는 수행에 잡힐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수행을 쉼 없이 했다가 완전히 망가진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깨닫지 못하고 추락했다.
미묘한 일들, 미로를 걷는 것. 그것은 미로를 걷는 것의 배후의 의도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도가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영적으로 더 밝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의도가 너무 강력해서 당신이 땅에다가 무엇을 그리고 거기 걸어 들어가더라도 나올 때에는 더 나은 상태일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미로를 축복하는 것이 당신의 의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헌신적인 행위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건 약 540으로 측정된다.
성인다움570은 여기 이 그룹이 도달할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목표이다.
당신은 ‘오, 난 사악한 작은 죄인인 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자기 연민이다. 그렇지 않은가?
오, 신이시여, 하찮은 나. 사악한 죄인.
그만 둬라.
히말라야나 낯 선 외국에 가서 봉사하는 것, 이런 많은 do gooderism은 영적인 허영과 에고티즘이다. 만약 당신이 인류를 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도시의 도로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멈출 수 있다.(미국에서는 일주일에 2000명가량이 교통사고로 죽는다고 하심.)
그 나머지는 모두 연출기법이다. 만약 당신이 사회를 도울 어떤 것을 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고속도로에서 죽는 사람들을 1000명으로 줄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소위 영성의 글래머와 영성의 실상을 구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성의 실상에는 글래머나 글래머적인 허세가 없다.
당신은 영적인 이슈에 대한 glamorization을 본다. 처음에는 영성에서 시작되지만 이후에 글래머화되고 거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 된다.
지구 온난화를 멈추자. 당신들을 지구 온난화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지구 온난화를 멈추려면 당신이 그 원인이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