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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2003년 8월강의

깨달음 23

by 빌보 배긴스 2016. 10. 20.


깨달음 23

 

그것은 자신의 적을 처형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처형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쾌락을 짜낸다.

결국 당신의 에고 깊숙이 있는 살인 충동은 동물의 진화에서 온 것이다. 동물은 다른 존재를 지배하기를 원하지 않고 죽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적을 죽이는 것은 무의식적인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앙심을 더 누그러뜨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그것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더 용서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도 더 용서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온건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그 사람이 전기의자에서 처형되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있는가?’

부정성이 주는 보상을 포기하려는 자발성이 그것을 풀어준다. 당신이 고통이나 being right에서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본다면, 용서는 현실적인 이해에서 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 당시 그것이 될 수 있는 만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꽃이 지금 이 순간까지 피지 않는다면 우리가 꽃을 처벌해야 하는가? 줄기를 잘라버려? 어쩌면 꽃을 좀 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쁜 꽃이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가?

당신은 에고의 입장의 우스꽝스러움을 보기 시작한다. 당신이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에고의 구조를 약화시키게 되고 거기에서 벽돌을 빼게 되고 에고는 점점 더 약화된다.

비이원성은 에고를 초월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에고를 이해해야 한다.

에고를 더 이해할수록 에고는 더 많이 무너진다.

컴패션은 지속적인 것임을 발견한다. 그것은 이미 당신 안에 있는 헌신처럼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당신 안에는 이미 강력한 헌신의 우물 혹은 저수지가 존재한다.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왜냐하면 커다란 장애가 올라올 때, 당신 안에서 자신도 놀랄 만큼 신에게 도달하기 위해 어떤 것이라도 겪으려는 강력함과 절대성이 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신의 중력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그 중력은 한층 더 강력해진다.

그리고 최후의 문에서 당신은 생명 그 자체를 surrender해야 한다. 중력이 너무나 강력해서 잠깐의 주저함이 있고 그리고 언젠가의 생에서 들은 지혜의 말이 당신에게 온다. 그리고 여행은 끝이 난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이미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여기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마치 등산과도 같다. 그 위에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이미 그 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스스로를 보고 이렇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 내 안에 없어.’

지금은 그것이 당신에게 없다. 거기까지 갈 때까지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 당신이 영적인 여정을 갈 때 필요한 것은 이미 모두 제공되어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긍정)

그래서 당신이 그만큼의 헌신이나 충동 혹은 확신이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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