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4
벌레는 생존하거나 생존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거기에는 흥미도 없다.
벌레는 단지 존재할 뿐이다. 생존은 당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이다.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생존하는 것은 존재하는 대로의 자연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환원론. 110으로 측정되지만 누가 말하는지에 달려있다.
그러나 기계론적 환원론은 단순한 선형적 설명이지 자연이나 실상 등에 대해 설명할 수 없으며 우주의 창조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논쟁들은 결국 모두 물질 대 영으로 귀착된다.
유물론자는 영 같은 것은 없다고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부정에 아주 열을 올린다.
비선형적 핵심 대 형상.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의 핵심은 형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형상은 superimposition이다.
어떤 것의 핵심은 그 에너지이다. 그리고 에너지 그 자체는 형상을 넘어선 것이다.
형상에 그 특정 묘사를 부여하는 것이 그 에너지이다.
모든 형상은 선형적인 정보이다. 그것은 형상에 대한 흥미로운 정의이다.
선형적 정보가 그 형상인 것이다. 어떤 것이든 선형적인 것은 당신이 분석해서 정보를 얻는다. 모든 형상이 선형적 정보이다.
우주는 무한한 필드의 표현이다. 무한한 우주는 영원히 빛의 속도로 팽창한다.
우주는 빛의 속도로 영원히 팽창한다.(긍정)
우주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한다.(긍정)
O, I see. 그 잠재성이 그 현실보다 더 빠르게 팽창한다. 오케이. 무한한 잠재성.
우주는 동시적으로 모든 방향으로 빛보다 빠르게 팽창한다.
일 입방 센티미터의 공간의 에너지가 우주 전체의 질량보다 더 크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한한 파워에 대한 개념을 준다. 일 입방 센티미터의 공간, 그 빈 공간에 전체 우주의 에너지 총량 보다 더 큰 에너지가 있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것은 팩트이다.(긍정) 그것은 팩트이다, 일 입방 센티미터의 공간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우주의 총량 보다 더 큰 것이다. 오, 그것은 두렵기까지 하다. 사고로 그 공간에 접속이라도 되면, 하하하.
측정된 의식수준이 묘사하는 것은 정말 패러다임이다. 직역적 기계론적 환원론자는 500이상으로 측정되는 것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과학 대 종교에 대해 보는 것은 모두 패러다임의 갈등이다.
과학은 오직 의식수준 400까지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현실은 500 이상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400대 안에서는 영적 실상을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이 과학의 한계이며 패러다임의 한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패러다임 충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당신은 비선형을 부정하는데 선형을 사용할 수 없다. 그것들은 패러다임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 여러 가지를 측정할 수 있지만 즐거움을 측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