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10
구약의 신은 신인동형적인 용어로 묘사되어 있다. 질투하고 보복하며 분노한다.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등을 돌리게 했다. 그들은 인간만큼이나 나쁜 신을 대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질투하고 보복하며 분노한다.
그런 성격적 특성을 가지고 어떻게 신일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신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지구의 다른 쪽에서 되풀이 되는 이유가 떠올랐다.
자연적 재앙들 때문이다. 지진, 홍수 그리고 불. 그것들을 신이 화가 났다고 본 것이다.
우리가 바르게 찾은 것인지 보자. 이것을 질문할 허락이 있다.
이것은 바르게 되짚어 찾은 것이다.(긍정)
거기에서 온 것이다. 아무도 이전에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내말은 그것이 너무나 명백하다는 것이다.
땅이 무너지고 흔들리고. 페루에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해안으로 쓰나미가 온다. 그리고 전염병이 돈다.
신이 화가 났음에 틀림없어!
That’s all it is, isn’t it?
당신은 심장을 도려내는 인신공희를 한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의 심장을 도려낸다.
아름답고 젊은 처녀들. 그녀의 심장을 도려내어 바치면 어쩌면 신이,
분노한 신은 자연적 재앙에 대한 물활론적 개념화이다.
당신은 카르마라는 원리를 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없다. 왜 당신이 쓰나미가 올 때 거기에 있었는지, 혹은 지진이나 홍수 때에 거기에 있었는지. 큰 지진이 일어날 때 당신이 왜 그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는지.
분노한 신이 그 명백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이 신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당신은 모든 불신자들을 죽임으로써 그 신을 기쁘게 한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책의 한 챕터에서 분노한 신을 어떻게 달래는지에 대해 썼다.
당신은 부정적인 신은 자연적 재앙에 기초한 인간의 경험과 그에 대한 원시적인 해석에서 올라왔음을 본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노한 신을 기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이 당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이 남자는 길모퉁이에 있었다. 그의 부인은 도망갔고 파산했고 심한 고혈압이다.
그가 말한다. “신이시여 왜, 왜 접니까?”
“나도 모르겠어. 조지. 너의 어떤 면이 날 열 받게 한다구.” 하하하하
우리는 인류의 운명을 공유한다. 어떤 면에서 그것이 우리를 구분한다기보다는 유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우리 자신처럼 부침을 겪는다.
그것이 분노하고 보복하는 신, 두려움의 신이 나온 곳이다.
신을 두려워하라. 나는 설교자가 신을 두려워하라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나를 벌벌 떨게 했었다. 애초에 나는 강박적으로 소심했던 데다가 어떤 사람이 내게 신을 두려워하라고 했으니, 오, 세상에.
나는 생각하는 것도 두려웠다. 나는 내가 뭘 보고 뭘 생각하는지도 조심해야 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