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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2002년 2월 강의

주관성 18

by 빌보 배긴스 2018. 9. 17.

주관성 18

 

의식지도의 제일 위는 무한하고 무조건적 사랑이고 아래로 갈수록 사랑이 점점 적어진다공룡의 수준까지 내려오면 사랑은 부재하게 된다공룡은 다른 존재들을 씹어 삼킬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의식수준은 사랑이라는 척도로도 측정될 수 있다. 사랑이 부재하는 곳에는 자기중심성이 있다. 자기애적 과대망상이 있다거기서 에고의 작은 자아가 신이 된다. 그 망상을 유지하기 위해 참된 신은 거부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하위 아스트랄이 올라오는 것이다. 신성을 창조주로 모시는 의식consciousness을 거부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밀로소비치다. 나는 인류 전체보다 더 위대하다. 국제 사법 재판소는 내 행동을 문제삼을 권리가 없다. 판사들에게는 어떤 권한도 없고, 이 법정도 그런 권한이 없다나는 인류 전체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아무 벌도 받지 않고 3 5백만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어차피 당신들이 상관할 바 아니다."


히틀러도 그렇게 말했다. "전쟁에 졌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살 가치가 없다." 그는 모든 독일인들이 죽기를 바랐다파리 전체가 파괴되기를 바랐다역사상, 신성한 사랑이 없거나 그것을 거부한 존재들, 공룡의 계보는 밀로소비치와 히틀러, 네로 혹은 인류의 고문자나 살인자 같은 사람들로 진화했다


초식동물과는 반대되는 방식이다사랑은 모성애로서 진화상 처음으로 나타났다사랑으로의 진화, 사랑이 되는 것 또는 신을 선택하는 것, 아니면 신을 거부하고 공룡 에너지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선택의 두 방향이 있다. 사랑이 존재하는 정도는 사랑의 무조건성에 달려있다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기려는 자발성이 그 척도상 유일한 변수이다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 현존은 무한한 잠재성이다. 그것은 펼쳐지는 참나의 실상이다동물성, 동물 영역의 잔존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다다른 존재의 생명을 대가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공룡의 길사랑으로 생명이 유지되는 포유류, 초식동물의 길. 사랑 혹은 사랑 아님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신을 선택하느냐 선택하지 않느냐는 우리가 창조된 대로의 본성으로서의 자유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무신론자였다. 독실한 무신론자였다. 단지 지적인 입장으로 가볍게 여겼던 것이 아니다. 그 전에 독실한 신자였을 때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전 인류의 고통의 총체가 드러났다. 마치 37살에 왔던 무한한 빛의 정반대같았다. 그 순간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 정도의 고통을 허용할 수 있는 신이라면 너무 싫었다. 그 때부터 광적인 무신론자가 되었다. 


나는 에고가 해 놓은 일에 대해 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혼동했던 것이다인류의 총체적인 고통은 에고의 입장들이 만든 것이지 신의 결과물이 아니다신은 그런 것들을 창조하지 않으셨지만, 에고는 그런 것들을 만든다나는 에고가 기능한 것에 대한 결과를 신의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최종 수정: 2018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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