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성 23
그것이 그들의 문화다. 그 여자가 지갑을 거기 뒀으니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식의 사고 방식이다. 나는 그런 이들을 일주일 내내 치료해야 했다. 다른 현실이며, 적용되는 규칙도 다른 것이다.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는 것이 정당화로 사용된다. 물론 400대의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죽일 만 하니까 죽어도 마땅한 것이다. 공룡들이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는 데는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다.
에고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에고는 위치성에서 얻어내는 보상으로 생존하며, 그 보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에 대해 정직해야 하며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즐긴다.
이제, 더 높은 목적을 위해 그 즐거움을 기꺼이 놓아버릴 수 있는가? 그 "희생"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이미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있다. 에고에게는 그 모든 영광, 명예, 정당화, 복수 등 그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에고에게 실제로 큰 희생이다. 옳음, 증오를 놓아버리는 것, 그것이 작은 희생인 척하지 말라. 그것은 큰 희생이다.
여러 가짜 영적 가르침들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본질적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진실은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감정적 정직함의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다.
에고의 입장에는 엄청난 보상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은 오늘 몸으로 여기 앉아있지 않고, 카르마적으로 더 높은 영역에 있었을 것이다. 다시 여기에 몸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에고가 주는 만족을 위해 영적인 진실을 거듭해서 팔아넘겼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삶에서는 그것이 검토되기 위해 올라왔다. 신의 현존을 경험하는 것은 에고에게서 얻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사실 이에 대한 답은 오직 믿음으로 얻어질 수 있다. 경험적으로는 에고를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믿음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다 겪었으며 신을 경험하는 것, 최종 결과는 형언할 수도 없는 놀라운 것이라고 말 하는 한 존재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전체 역사를 통틀어 전체 인류가 가진 모든 가치의 총체성을 초월해있다. 전체 역사를 통틀어 전체 인류가 누렸던 모든 즐거움과 가치, 모든 감정적, 물질적 획득 등은 신의 현존과 비교하면 먼지 한 톨 정도인 것이다.
최종 수정: 2018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