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성 32
고통이라 부르지 말고, 저항을 멈추고, 그 감각에 어떠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것을 초월하게 되며 통증은 사라진다. 천사들에 의해 다른 영역으로 옮겨진 것과 같다. 이 정도의 서렌더는 실제 천사들을 주변으로 부른다.
명백하게 천사적 존재들에 의해 몸 밖으로 들어 올려지는 느낌이었다. 황홀한 은총, 부드러움, 그리고 사랑의 광휘가 심오했다. 육체성에서 들어 올려진 동안에도 육체는 온갖 수술 및 엄지 손가락 절단 등을 겪는다. 그리고 오직 무한한 기쁨 만이 존재했다. 그 강력한 내맡김이 천사들로 표현된 신의 현존을 불러왔다.
근육테스트는 배움의 도구이다. 조사하는데 길잡이 같은 것이다. 인생에서 카르마적으로 어떤 문제나 질문에 사로잡힐 수가 있다. 그것들은 표현되거나 알아차려 지도록 되는 경향이 있다.
삶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전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시작된다. 전생에 나는 무엇무엇이었을거야. 카르마를 믿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생엔가 나는 소매치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실제로 한때 프랑스에서 소매치기였던 적이 있다.
이러한 직관적 앎은 이 생에서의 영적 작업을 덜 고통스럽도록 재맥락화해 준다. 또, 의식진화에 대한 이해 자체를 확장시키고 활성화한다. 이 행성에서 당신이 아무 근거 없이 무nothingness에서 430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가능하지 않다.
또 다른 흥미로운 측면은, 카르마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각각의 개인이 태어나는 순간 어떻게 측정 가능한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아이들은 에이즈에 감염된 채 태어나고 6개월에 아사한다. 이건 도대체 어떤 카르마란 말인가. 그들은 30으로 측정되는 의식으로 태어난다. 죽음과 그리 멀지않은 수준이다.
자의적으로 이런 사건들을 결정하는 것 같이 보이는 공정한 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의식수준으로 이 행성에 들어오는 데 말이다. 아이들이 이 행성에 각각 다른 의식수준으로 오는 것에 대한 설명은 카르마이다.
자신의 영적 진화의 다음 단계를 직관하거나 할 때, 근육테스트 같은 영적기법의 사용으로 그것을 확인해주거나 부정한다. 자신의 영적 영감을 신뢰하기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적 영감으로 표현된 내면의 신의 현존이 당신의 영적 길을 이끌어준다. 강의에 참석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만트라를 암송하는 것 등 모든 것들을 말이다.
그런 것들은 영적인 직관과 영감에서 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영적 지향성을 가진 것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할 수 없고, 그렇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을 공격해서도 안 된다.
의식 자체가 비개인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알아차림도 비개인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참나의 현존도 모두에게 편재하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에 이런 저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종 수정: 2018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