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성 36
구름이 어디로 갈 것인가는 구름의 크기·지속·습도·기압 등에 달려있다.
신의 현존을 깨닫기 위한 명상 기법은 동일시를 의식의 내용에서 부터 필드로 옮겨가는 것이다. 자신이 마음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이 펼쳐지는 장인 것이다. 음악의 음표가 아니라 수신기다. 어떤 음악이 연주되어도 수신기는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은 생각, 이미지, 기억 같은 내용과의 동일시에서, '그것들이 알려지도록 힘을 주는 것'으로 도약한다.
당신은 필드를 아는 자가 된다. 목격자가 되고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경험자가 된다. 경험자를 넘어서는 것이 목격자, 관찰자이다. 목격자·관찰자·경험자는 비개인적 필드에서 올라온다. 목격과 관찰은 당신의 의지에 따라 그만 둘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비개인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그것이 당신이라면 마음대로 끄고 켜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목격자·관찰자·경험자 배후에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인적 장인 의식자체가 있다.
의식도 알아차림의 필드가 없다면 자체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않는다. 영화와의 동일시를 그만 두고, 오직 영화가 투사되는 바탕이 무형이기 때문에 영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기 시작한다. 형상·기억과 경험의 내용과 동일시하는 것을 그만두고, 스스로를 형상을 넘어서는 것, 형상이 드러나는 장으로 본다.
당신은 참나가 비개인적이라는 것을 목격한다. 의식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뭔가를 하려는 것에 의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존재한다.
하루 종일 깨어있다면 당신은 의식적이다. 의식적임을 어떻게 아는가? 당신이 의식적임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알아차림 자체도 비개인적이다.
당신은 기층으로 돌아간다. 존재한다는 알아차림에 대한 알아차림인 나타난 신God Manifest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감각하는 그 성질에는 시작도 끝도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시간을 초월하게 된다.
결국에는 나타난 것Manifest으로서의 신 뿐 아니라 나타나지 않은 것Unmanifest으로서의 신에게 돌아가게 된다. 나타남으로부터 나타나지 않음으로 떠오른다. 나타나지 않은 것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신격God Head으로 불렀다. 신격으로부터 드러난 것인 신이 떠오르며, 그것으로부터 우주가 떠오른다.
명상을 통해 이것을 알 수 있는데, 영화와의 동일시로부터 물러나서 의식이 없다면 영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며 의식이 지배적이며 영화의 내용은 덧없는 것임을 본다. 고로 사람이 영적으로 진화할수록 일시적인 것에 더 적은 가치를 두게 된다. 일시적인 것의 덧없음이 점점 더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모든 획득은 언젠가 버려야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하루 종일 노력하고 그것을 버리는 데에는 2주일이 필요하게 되는 식이다. 모든 것을 재포장해야하고 팔고 옮기고 도매로 팔고 소매로 팔고 유언을 남기고 등등. 일시적인 것이 점점 더 가치가 적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작업의 영원성을 깨닫게 되어 그것이 점점 더 가치 있어 진다. 어떤 영적인 환상을 꿰뚫어 보고 영적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 때 당신이 보는 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것은 카르마에 심오한 영향을 준다.
최종 수정: 2018년 10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