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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수준의 깨달음

3. 500대의 의식수준과 12단계 운동. 기적수업

by 빌보 배긴스 2016. 3. 13.

3. 500대의 의식수준과 12단계 운동. 기적수업

 

흥미롭게도 400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논리 등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500이상의 은혜로 유지되는 장에 떠있는 코르크와 같기 때문에 신의 현존이 그들로 하여금 이성과 놀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필드의 힘이다.

500에서 우리는 변형을 본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한 설명했지만 사실은 뉴튼식의 용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학적 연역론자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사랑이나 측정 불가능한 것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급진적인 연역적 과학주의자들에게 보이지 않고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과학자 자신들도 완전히 스스로의 주관적인 경험적 자아 안에서 살고 있기에, 그가 앉아서 일종의 허세부리는 목소리 톤으로 그런 얘기를 할 때조차 그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주관적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역시 주관적인 진술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실상. 모든 실상에 대한 경험은 완전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500대의 주관성은 사랑으로 경계 지워지고 그리고 500에서 540까지 사랑의 능력이 증가한다.

540에서는 조건 없는 사랑이 된다. 500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아직까지 어떤 조건이 있다. 540에서 사랑은 무조건적이 되는데 이 단계의 실용적인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알콜 중독은 인간의 전 역사를 통해 치유 불가능한 것이었다. 종교적인 신앙을 통해 회복한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빌 윌슨이 변형적인 경험을 하면서 12단계 운동에서 나온 기본적인 영적원리들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A.A540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위대한 12단계 운동이 미국의 상당 부분을 변화시켰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조용히 뒤에서 일해 왔다. 이 운동은 모든 종류의 인간 문제에 유용하다. 예를 들면 체중문제, 자살, 우울증, 알콜, 마약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540의 에너지 필드가 필요하다. 400대에서는 이 문제들이 치유되지 않는다. 과학도 중독을 치유하지 못한다. 사랑 자체도 치유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엄마도 당신을 사랑하고 남편도 아이들도 당신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죽음을 불사하고 술을 마신다.

500520530도 해결하지 못한다. 치유를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필드의 힘이 유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으로 540의 에너지 장이 수백만의 희망 없는 불치의 병에 치유를 초래했음을 입증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칼융과 롤렌의 12단계 운동에 대한 기여를 설명하심.

이로 인해 인류는 기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파워풀한 장의 힘이 그동안 불치로 여겨졌던 수많은 병을 치유했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파워와 포스를 구분할 수 있었다. 포스로 하자면 당신은 알콜 중독자를 수감하면 된다. 나는 만 명이 넘는 알콜 중독자들을 치료했는데 그들이 감옥에 들락날락하면서 집을 잃고 부인은 떠나고 직장도 차도 잃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포스로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영향도 주질 못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540의 장에 가게 되면 그는 갑자기 뭔가 다른 것을 가지게 된다. 그 순간 이후 그는 회복된다. 이것은 우리가 묘사해온 540의 에너지 장에 대한 임상적 예이다.

기적수업은 600으로 측정된다. 여기서 더 확장된 현상을 보게 된다. 영적인 길을 따르면서 사람들이 중독 뿐 아니라 더 심각한 질병에서 치유되기 시작한다. 기적수업 모임은 AA처럼 자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책임자도 건물도 없다. 기적수업 모임에서는 인류에게 알려진 온갖 불치병들의 회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이생에서 겪어야하는 카르마를 상쇄하지는 않는다. 당신은 그 질병을 초월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카르마를 사람들이 그걸 어떤 식으로 경험하는 지로 표현할 수 있다. 기계적인 사람은 유전자나 크로마솜 이라고 할 것이고, that’ O.K. 하지만 유전자와 크로마솜은 카르마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당신이 인과율을 넘어섰을 때 모든 것은 장의 결과로 그 자신인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의 결과로 당신이 이 삶에 올 때 자신의 경향성과 잠재성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 유전자와 크로마솜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서구인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동양인들에게는 이미 주어진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카르마에 따라 살고 일상에서의 심오한 진실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실용적인 영적 교사로서 나는 당신들에게 근육테스트로 200이하인 것은 모두 피하고 200이상인 것들을 추구하라고 말한다.

10000년 전의 베다의 가르침이나 이후의 영적인 가르침의 핵심은 모두 같다. 신념체계로 인한 종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종교는 신비주의자로 기술되는 존재의 주관성을 기반으로 한다. 참나를 실현한 이들은 같은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고한다. 오직 하나의 진리가 있다. 고로 그것은 언제나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화신들과 위대한 현자들은 언제나 같은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실상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종교의 근원은 같다.

세상 모든 것들은 각각 영적 에너지의 강도를 나타낸다. 영적 지향과 진리에 대한 정렬이 클수록 측정치가 올라간다. 그래서 의식지도는 매우 실용적이다.

당신은 이 영적 교사는 온전하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말하고 yes를 얻거나 not-yes를 얻는다. ‘이 가르침은 내게는 너무 이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고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사람은 이것을 가이드로 이용할 수 있다. 영적 수행자가 에고를 초월하고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우리가 이 지도의 최상위를 1000으로 한 이유는 이 행성에 존재했던 가장 높은 의식 수준이 몇인가를 물었을 때 1000이 인간 영역에서 가능한 한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의 신경계는 1000이상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 부처님, 예수님, 크리슈나님 및 모든 위대한 화신들은 1000으로 측정되었다.

깨달음은 600에서 시작된다. 사랑의 수준에 가고, 처음에는 조건적인 사랑에서 나중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고 그리고 영적인 길, 명상, 영적 기법 등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점점 더 헌신적으로 그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삶을 변형적이고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경험하기 시작한다. 500대 후반에서는 매우 놀랍다. 모든 것의 완전한 아름다움을 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이 사랑이고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사랑이자 아름다움이다.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조화. 그리고 기적적인 일이 저절로 발생하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지속적인 것이 된다. 기적수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변형적인 상태에 들어간다. 당신이 시내에 운전하면서 들어가면서 주차할 자리를 생각하면서 갔는데 거기 주차할 자리가 있다. 단 하나의 자리가 있다. 당신이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차가 빠져나오고 당신이 들어가게 되는 식이다. 이런 일이 처음 일어날 때는 이에 대해 언급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에 당신은 그것이 삶의 방식이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지속적인 기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놀랍게도 아름답고 잘생겼고 매력적이다. 사람은 언제나 모든 것과 모든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 존재한다.

그러다가 그 상태가 500대의 아주 후반에 가게 되면 엑스터시가 있다. 엑스터시가 지속되면 당신은 더 이상 세상에서 기능할 수 없다. 라마 크리슈나가 묘사했고 나 자신도 경험했지만 엑스터시에서는 세상에서 기능할 수 없다. 지극한 엑스터시의 표현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즐거움으로 춤을 출 수는 있지만 기능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 또한 신에게 surrender한다. 영적인 매 수준 마다 무엇이 제시되든 신에게 surrender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600수준에 이른다. 무한한 침묵과 지복, 모든 이해를 넘어선 심오한 평화의 수준이다. 심리적인 평화나 감정적인 평화가 아닌 신의 평화. 다른 영역의 평화이다. 그 수준에서 당신은 먹거나 호흡하거나 기능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시간 밖의 지복 속에 있고 이것은 고전적으로 사칫아난다라고 불린다. 조건이 호의적이라면 몸은 먹여지고 보살펴져서 움직이고 살아남겠지만 그 상황에서 조건이 호의적이지 않다면 -사실 그 조차도 의미 없지만- 몸은 쓰러지게 된다.

깨달은 상태의 사람들 중 50%가 떠난다. 그 상태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당신에게는 떠나도 된다는 허락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는 필요한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총체적이다. 그 상태의 지복은 모든 것이 완결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이후 몸이 살아남으면 당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독립적이 된다. 그 상태에서는 기능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다. 내가 당시에 한 일은 오래된 공구들을 챙겨 트럭에 싣고 떠나는 것이었다. 굿 바이. 그래서 나는 미국에서 제일 큰 병원과 엘리트적인 생활방식을 떠났다. 그리고 소도시로 옮겨와서 냉장고에 바나나와 펩시 두 캔, 치즈 한 조각이 있는 삶을 살았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었다. 싸구려 잡화점에서 간이침대를 사고 상자를 구해 촛불을 두고 사과하나 치즈 한 조각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갖춰진 거다.